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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안민 작성일26-10-23 04:48 조회1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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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마산시 한일합성섬유주식회사(한일합섬) 공장을 따라 줄지어 있는 쪽방을 본 마리아 하이젠베르그(1930~2020) 선생은 여성 노동자들이 마음 놓고 지낼 공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1976년 3월 가톨릭여성회관이 문을 열게 된 배경이다. 이후 회관은 노동자·노인·이주민·새터민·여성이 배우고 숨쉴 수 있는 공간이 됐다. 그런 가톨릭여성회관이 올해 50주년을 맞이했다.
2024년 관장으로 취임한 후 50주년 기념 행사 준비에 바쁜 조정혜(67) 가톨릭여성회관 12대 관장을 지난 20일 창원시 마산회원구 석전동에 있는 회관에서 만났다.
시민·노동자 연대 공간으로, 마음 쉼터로
회관은 1976년 3월 1일 독일 미세레올재단과 오스트리아 그라츠교구 지원으로 천주교마산교구 사회복지 인가 1호로 세워졌다. 마산역 인근 터 1005㎡(304평)에 지하 1층·지상 2층으로 지어졌다. 현재 무료급식소를 운영하고 있으며, 각종 교육사업이 활발하게 펼쳐지고 있다.
초대관장을 하마리아(마리아 하이젠베르그) 선생과 박기홍 몬시뇰 선생이 맡았다.
1976년 개관 당시 마산에는 한일합섬과 마산수출자유지역(현 마산자유무역지구), 창원기계공업지역(현 창원국가산업단지) 등이 들어서 산업이 번성했다. 하마리아 선생은 한일합섬 인근 산호천을 따라 늘어선 쪽방들을 눈여겨봤다. 공장은 번성했지만, 그곳에서 일하는 수많은 여성 노동자는 마음 둘 곳조차 없어 보였다. 교육과 문화를 비롯한 삶의 가치를 누릴 기회도 부족했다.
하마리아 선생은 여성의 권리를 찾는 활동에 나서는 한편, 가족을 떠나 낯선 환경에서 일하는 여공들이 마음을 붙일 수 있도록 곁을 지켰다. 그렇게 1979년 '민들레 축제'가 처음 열렸다.
이후 회관은 여성·청소년·노동자·노인을 위한 복지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노인사랑방학교와 노동자 교육·상담을 위한 '노동문제상담소'를 열었다. 이주민 가족과 북한이탈주민을 위한 교육도 했다. 지금의 한울학교로 이어지는 야학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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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지원 없이 후원으로 운영하다 보니 일부 사업은 사라지기도 했고, 다시 복구되기도 했다. 그래도 회관은 언제나처럼 시민 곁에 있었다. 회관에서는 자연스럽게 다양한 소모임(서클)이 생겨났다. 연극단체 '불씨촌', 놀이패 '베꾸마당', 음악단체 '오선지' 등이 대표적이다.
1987년에는 민주화운동의 거。 역할도 했다. 그해 2월 경찰 고문으로 숨진 고 박종철 국민추도회를 열었고, 7월 28일에는 '경남지역 노동자연합 결성보고대회 및 노동3권 쟁취를 위한 노동자 한마당'이 열렸다.
조 관장은 1987년부터 1990년까지 회관 총무로 일하던 때 일화를 들려줬다. 어느 날 오전 6시 10분, 장정 16명이 회관 대문을 두드렸다. 조 관장은 기지를 발휘해 대학생들이 만들어 놓은 화염병을 급히 옮기고 막걸리를 뿌려 흔적을 지웠다. 대문을 열자 수색이 시작됐고, 조 관장은 서둘러 마산교구청에 전화를 걸었다.
"신부님들이 와서 항의하고, 하 마리아 관장님은 경찰서장 오라고 해서 '왜 사람을 밀치느냐, 때리느냐'하면서 강하게 말하셨어요."
이 일화는 회관 50주년 기념으로 제작한 다큐멘터리 <여러분의 마리아입니다>(이승준 감독)에서 더 생생하게 담겼다고 조 관장은 설명했다.
초대 관장 하마리아 선생을 기억하며
조 관장은 취임 이후 회관 50주년 기념사업을 기획하고 준비하는 데 힘을 쏟았다. 이승준 감독의 다큐 제작총괄도 맡았다. 영화 제목 속 마리아는 1·4대 관장을 지낸 마리아 하이젠베르그, 한국 이름 하가용인 하마리아 선생이다.
하마리아 선생은 주로 '하 마리아' 또는 '하 선생'으로 불렸다. 오스트리아 태생인 그의 성이 '하이젠베르그'인 걸 본 대구교구 주교가 "하 씨네!"라고 하면서부터 하 씨 성을 지닌 마리아 선생이 됐다.
조 관장은 그의 삶과 잔잔했던 일상을 다큐를 보는 이에게 전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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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관장은 "하마리아 선생이 이룬 업적을 따지려면 많습니다. 하지만 선생 입으로 내세운 적은 없습니다. 다만 누군가가 도움을 구하면 이야기를 들어주고 대답하고, 또 기도했습니다"라며 다른 이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던 모습을 떠올렸다.
1959년 한국에 온 하마리아 선생은 대구에서 오래 머물다 1966년 마산교구가 설립되면서 김수환 스테파노 주교 요청으로 마산에 왔다. 1968년부터 국립마산병원에서 결핵 환자들을 돌봤다. 조 관장은 "당시 결핵 환자들이 하마리아 선생을 두 번째 어머니라고 부를 정도로 그들을 아끼고 돌봤다"고 말했다.
4대 관장에서 물러난 하마리아 선생은 병을 앓다가 1992년 오스트리아 빈으로 돌아갔다. 이후 10년에 한 번씩 마산을 찾았다.
조 관장은 다큐 제작 과정의 어려움도 털어놨다. "회관의 50년 자료가 부족했고 예산도 거의 없었습니다. 하마리아 선생도 세상을 떠났고, 자신에 관해 남긴 기록도 거의 없었습니다. 제작이 쉽지 않으리라 예상했지만, 이승준 감독이 제작 취지를 이해해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다큐는 하마리아 선생을 기억하는 이웃과 가족의 증언, 몇 장 남지 않은 사진, 단 하나 남은 육성 기록으로 구성했다. 1년 8개월간의 제작을 거친 다큐는 24일 오후 4시 CGV 창원더시티에서 상영한다. 상영 후에는 이승준 감독과 조 관장이 관객과 대화를 나눈다.
하마리아 선생(오른쪽)이 가톨릭여성회관에서 환갑을 한국 전통 방식으로 지내고 있는 모습. /가톨릭여성회관
앞으로 50년 '희망 공동체'로
민들레 축제는 1979년 시작해 매년 10~11월 열리는 연례행사다. 회관 내 소모임이 준비한 공연을 선보이고, 한 해 동안 고마웠던 이들에게 마음을 전한다. 주변 이웃을 비롯해 회관을 찾은 이들에게 식사도 대접한다.
올해 축제는 23일 열린다. 개관 50주년 기념식은 이날 오후 5시 회관 강당에서 열리며, 민들레합창단이 공연한다. 조 관장은 노인 한 명마다의 인생 1년을 모아 50주년을 채우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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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관에서 글을 배우는 노인들은 축제 마지막에 '홀로 아리랑'과 '사랑으로'를 부를 예정이다.
조 관장은 올해를 끝으로 민들레 축제 형식을 바꿀 계획이다. 그는 "어르신들이 건강하시지만 많은 음식을 한꺼번에 준비하는 일은 힘듭니다"라며 "앞으로는 문화축제로 바꾸려 합니다. 어르신들이 트로트 축제도 원하시니 그런 방향도 생각해 봐야겠습니다"라고 웃으며 말했다.
축제에서 전시도 빼놓을 수 없다. 과거 홍보물을 보면 회관 교육 프로그램에서 만든 그림을 전시하거나 작가를 초청하는 행사가 이어져 왔다. 올해는 27일까지 이강용 화백의 펜화 세 。을 선보인다. 사진작가 벨루가의 작품도 전시한다. 철거지역에서 죽은 개와 고양이 등을 촬영한 사진이다. 인간뿐 아니라 동물과도 공존해야 한다는 회관의 생태적 관.을 담았다. 김종선 작가의 그리스도교 성화도 감상할 수 있다. 올해는 성 프란치스코 선종 800주년이기도 하다.
회관은 지난해부터 50주년 기념 행사도 이어왔다. 지난해 12월에는 신경숙 작가가 여공의 삶을 그린 소설 <외딴방> 개정판 출판기념회를 열었다. 올해 9월에는 '인공지능 시대에 인간 주체성 회복'을 주제로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천주교 마산교구장 이성효 리노 주교가 기조강연을 했고, 마산교구 인공지능위원장인 이승언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는 '인공지능 시대 인간다움의 가치를 보존하기 위한 장소로서 여성회관의 역할'을 발표했다.
조 관장은 반세기 역사를 바탕으로 시민과 함께 행복한 공동체를 만들어갈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 그가 지향하는 희망 공동체와 연대도 여기에 있다. 그는 "AI 시대에서 소외되는 이웃과 약자가 나타납니다. 50년 동안 약자의 권리를 지켜온 것처럼 회관이 해야 할 일을 하겠습니다"라며 "노인에게 AI를 잘 쓰는 방법을 알려주고, 일자리를 빼앗길까 불안해하는 청년들도 도울 예정입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요즘 사회는 단절되고 구분된 모습입니다. 같은 주제와 의견을 나눌 때는 통합될 필요도 있습니다"라며 "가톨릭여성회관이 통합의 구심. 역할을 하며 지역사회에 희망공동체로 남겠습니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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