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원해진 부부사이, 레비트라로 극복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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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창리차랑 작성일25-12-03 09:38 조회10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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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원해진 부부사이, 레비트라로 극복할 수 있을까
결혼 생활이 오래 지속되면 서로에게 익숙해지고, 일상적인 반복 속에서 때때로 감정의 기복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특히, 부부 사이에서 성적 관계가 소원해지면, 그로 인해 감정적으로도 거리감이 생길 수 있습니다. 한때 뜨겁고 열정적이었던 관계가 점차 평범해지고, 일상적인 생활 속에서 성적인 친밀감이 사라지면 서로의 관계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이는 부부 간의 감정적 유대감을 약화시키고, 결국 갈등이나 소통 부족을 초래하기도 합니다.
이때 레비트라는 부부 사이에 소원해진 성적 관계를 회복하고, 사랑의 열정을 되살리는 데 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레비트라는 성적 기능 개선을 위해 개발된 약물로, 성적 자극에 대한 반응을 증가시켜 성적 자신감을 회복시키고, 부부 간의 친밀감을 되찾을 수 있게 돕습니다. 본 글에서는 소원해진 부부 사이에서 레비트라가 어떻게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관계를 회복할 수 있는지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레비트라의 효과와 작용 원리
레비트라의 주요 성분은 베르디나필Vardenafil로, 이 성분은 PDE5포스포디에스터라제 5 효소를 억제하여 음경에 더 많은 혈액이 흐르도록 돕습니다. 그 결과로 성적 자극을 받을 때, 더 강한 발기 반응을 유도할 수 있습니다. 이는 발기부전 치료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며, 성적 반응을 원활하게 만들고 자신감을 회복시켜주는 약물입니다.
레비트라는 복용 후 약 30분에서 1시간 내에 효과가 나타나며, 약 4~5시간 동안 효과가 지속됩니다. 이 시간 동안 성적 자극을 받을 때 더욱 강한 반응을 보일 수 있으며, 그로 인해 부부 간의 성적 친밀감도 높아지게 됩니다. 또한, 레비트라는 식사에 관계없이 복용할 수 있어, 일상적인 상황에서도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습니다.
소원해진 부부사이에서 레비트라의 중요성
결혼 생활이 길어지면 서로에 대한 성적 흥미가 줄어들고, 다양한 이유로 성적 관계가 소원해질 수 있습니다. 일상적인 스트레스, 직장 내 압박감, 육아나 가사 등 여러 가지 외부적인 요인들이 성적 만족에 영향을 미치며, 결국 부부 사이에 성적 불만족이 쌓일 수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는 종종 서로 간의 대화 부족과 감정적인 거리감을 초래하며, 관계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1 성적 자신감을 회복
부부 사이에서 성적인 불만족이 커지면, 자주 느끼는 감정은 자신감 부족입니다. 자신이 성적으로 만족스러운 상태가 아니기 때문에, 그로 인해 상대방에게도 불만이 생기고 관계가 소원해집니다. 이때, 레비트라는 성적 자신감을 회복시킬 수 있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성적 자극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하도록 돕기 때문에, 성적 능력에 대한 불안감이 사라지고, 부부 간의 성적 친밀감을 되찾는 데 기여할 수 있습니다.
2 성적 흥미를 회복
서로에 대한 성적 흥미가 사라지면, 성적 활동을 더 이상 즐기지 않게 됩니다. 그러나 레비트라는 성적 자극을 자연스럽게 유도하고, 더 강한 반응을 만들어줍니다. 이를 통해 성적 만족도를 높이고, 서로에게 다시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돕습니다. 이 과정에서 부부 간의 감정적 유대감도 회복될 수 있습니다.
3 관계의 질을 향상
성적 관계는 부부 간의 감정적 유대감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성적 친밀감이 회복되면, 부부 간의 소통도 활발해지고 서로에 대한 애정이 다시 깊어집니다. 레비트라는 성적 문제를 해결하는 것 외에도, 관계의 전반적인 질을 향상시키는 데 큰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레비트라가 부부 관계 회복에 미치는 영향
성적 관계가 소원해지면, 그로 인한 갈등이 부부 사이에 상처를 남기기도 합니다. 부부는 때로 성적 불만을 해결하기 위해 대화하는 것 자체가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레비트라는 성적 불만을 해결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며, 그 결과로 두 사람 간의 친밀한 대화와 서로에 대한 신뢰를 다시 구축할 수 있게 합니다.
1 성적 만족도를 높여주는 역할
레비트라는 성적 자극에 더욱 강한 반응을 보이게 하여, 성적 만족도를 높여줍니다. 성적 활동에서 느끼는 만족감은 부부 간의 친밀감을 크게 향상시킬 수 있습니다. 성적 자극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게 되면, 그 경험 자체가 두 사람 간의 유대감을 강화하는 중요한 기회가 됩니다. 이로 인해 부부 관계의 전반적인 만족도가 향상되고, 감정적으로도 서로에게 더욱 가까워질 수 있습니다.
2 성적 불만족의 해소
소원해진 부부 관계에서 성적 불만족은 종종 커다란 문제로 자리잡습니다. 레비트라는 이러한 불만을 해결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며, 성적 기능이 회복되면 그로 인해 발생하는 부부 간의 갈등도 자연스럽게 해소됩니다. 성적인 만족을 회복하면, 부부 간의 감정적인 벽이 허물어지며, 서로 간의 이해가 깊어집니다.
3 자주 성적 활동을 즐길 수 있도록 돕기
레비트라는 성적 자극에 대한 반응을 자연스럽게 촉진시켜, 부부가 자주 성적 활동을 즐길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성적 활동은 부부 관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며, 이를 통해 서로의 애정을 재확인할 수 있습니다. 레비트라는 이러한 성적 활동을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즐길 수 있게 해줍니다.
레비트라의 사용 방법과 주의사항
레비트라는 복용하기 간편한 약물로, 성적 자극을 받을 때 더욱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게 돕습니다. 하지만 사용하기 전, 정확한 복용 방법과 주의사항을 숙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1 복용 방법
레비트라는 성적 활동을 시작하기 약 30분에서 1시간 전에 복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음식을 먹은 상태에서도 복용이 가능하지만, 과도한 기름진 음식은 약효를 감소시킬 수 있으므로 적당한 식사 후 복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2 주의사항
레비트라는 다른 약물과 상호작용이 있을 수 있으므로, 다른 약을 복용 중인 경우 전문가와 상담한 후 사용하는 것이 안전합니다. 또한, 심장 질환이 있는 사람이나 고혈압 약물을 복용하는 경우, 레비트라 사용 전 반드시 전문가와 상담해야 합니다.
3 부작용
레비트라는 대체로 안전한 약물이지만, 일부 사용자에게는 두통, 얼굴의 홍조, 소화 불량 등의 가벼운 부작용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증상은 일시적이며, 복용을 중단하면 사라집니다. 그러나 지속적인 발기, 시력 변화, 청력 저하 등의 심각한 증상이 나타나면 즉시 사용을 중지하고 전문가와 상담해야 합니다.
소원해진 부부 사이에서 성적 관계 회복은 중요한 문제입니다. 성적 친밀감을 되찾고, 부부 간의 유대감을 강화하려면 레비트라와 같은 성적 기능 향상 약물을 통해 성적 자신감을 회복하고 성적 만족을 높이는 것이 중요한 첫걸음이 될 수 있습니다. 레비트라는 성적 기능을 향상시켜 성적 자극에 민감하게 반응하도록 돕고, 그로 인해 부부 관계 전반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습니다. 부부 사이에 사랑과 친밀감을 다시 회복하고, 보다 행복한 결혼 생활을 위한 중요한 열쇠가 될 것입니다.
레비트라는 강직도를 개선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으며, 많은 사람들이 효과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레비트라 과다복용은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으므로, 권장 용량을 지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레비트라 구매를 원하시면 신뢰할 수 있는 약국이나 온라인 비아그라구매 사이트에서 정품을 선택하세요. 또한, 레비트라 복용법은 공복에 복용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며, 복용 전 충분한 수분을 섭취하는 것이 좋습니다. 올바른 복용법과 관리로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기자 admin@no1reelsite.com
지난 3월22일 서울 종로구 동십자각 앞에서 열린 윤석열 즉각퇴진·사회대개혁 16차 범시민대행진에서 다양한 깃발들이 입장하고 있다.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내란은 끝났지만, 광장은 끝나지 않았다.
지난해 12월3일 윤석열 전 대통령의 계엄 선포를 막기 위해 거리로 나섰던 시민은 ‘탄핵 광장’이 끝났지만 자신만의 광장에서 여전히 서 있다. 1년이 지났지만 광장의 깃발은 나부끼고, 응원봉은 빛나고 있다.
릴게임가입머니 ‘내향인 깃발’을 들고 탄핵 집회에 나섰던 강민지(31·활동명)씨의 ‘광장’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민지씨는 자신을 시민단체나 노동조합에 속해 있지 않은 디자인 관련 일을 하는 “평범한 내향형 직장인”이라고 소개했다. 록페스티벌에 들고나가던 ‘내향인’ 깃발을 챙겨 민지씨는 지난해 12월7일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뒤 처음 열린 주 한국릴게임 말 집회에 섰다. 그는 “여성과 소수자를 탄압하던 윤석열 정부가 일상까지 탄압하려 했다는 것에 분노해” 지난해 12월부터 4개월간 이어진 탄핵 집회에 연차를 써가며 참여했다. 그렇게 탄핵 집회는 “내 일상을 살아내기도 바빴던” 인생에 전환점이 됐다.
지난 9월 ‘내향인’ 기 알라딘게임 수 강민지씨가 수익금 기부 프로젝트를 위해 제작한 ‘내향인’ 티셔츠. 강민지씨 제공
민지씨는 엠비티아이(MBTI)의 내향형(I·아이)이 97%에 달하지만 탄핵 뒤에도 ‘내향인’ 깃발을 든다. 청소년기에 여성폭력에 노출됐던 경험을 떠올리며 서울시립십대여성건강센터 ‘나는봄’ 폐쇄 반대 집회에 갔고, 온라인릴게임 동물권행동 ‘카라’에서 봉사활동을 하며 만났던 강아지 ‘라일리’를 떠올리며 카라 노동조합에 지지 목소리를 냈다. 민지씨는 “아직도 투쟁할 일이 많다는 게 슬프지만, 연대가 계속되면 사회가 나은 방향으로 변한단 희망을 품는다”고 했다. 그는 더 실질적으로 연대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하다 지난 9월부터 10월까지 직접 제작한 ‘내향인 굿즈’를 팔아 수익금을 기 바다이야기무료 부하기도 했다. 목표 금액을 50만원으로 잡았지만, 수익금은 200만원을 훨씬 넘겼다. 강씨는 이 금액을 지난달 청소년 성소수자 지원센터 ‘띵동’과 카라 노조에 기부했다.
시민을 겨냥한 계엄 선포는 ‘내향인’을 거리로 나오게 했고, ‘누워 있던 사람들’을 일어나 외치게 했다. 국민의 분노는 탄핵 광장의 다양한 깃발들로 표현됐다. 케이(K)팝 팬들이 들고나온 ‘응원봉’은 탄핵 이후의 세계를 상상하는 빛이 되었다.
12월3일 내란 일에 ‘케이팝 응원봉 걸스’가 출간됐다. 이 책의 출판사 클레이하우스는 “한국의 젊은 여성들이 왜 응원봉을 들고 거리로 나섰는가”라는 시대적 질문을 던지는 인터뷰집이라고 소개한다. “최애(응원하는 아이돌 중 가장 아끼는 멤버)야, 살기 좋은 세상 만들어줄게”라는 마음으로 계엄을 막았던 구구·일석·희주(활동명)씨가 필자로 나섰다. 케이팝 팬인 이들은 “우리와 함께 이 자리에 선 이들은 누구일까?” 궁금증을 가지고 6명의 ‘응원봉 걸스’를 인터뷰했다. 희주는 최근 인스타그램에 “내성적인 제가 광장에 나가 모르는 사람들에게 말을 붙이고, 연락처를 건네고, 실패도 성공도 한 좌충우돌의 4개월이었다”며 “즐겁고, 기꺼워서 한 일이었다”고 출간 소식을 알렸다.
케이팝 팬으로 응원봉을 들고 거리에 나섰던 구구(왼쪽부터), 일석, 희주가 탄핵 광장을 밝혔던 응원봉을 들고 있다. 이들은 응원봉 팬들을 인터뷰해 ‘케이팝 응원봉 걸스’를 발간했다. 클레이하우스 제공
아이돌 콘서트에서 반짝이던 응원봉은 이제 다른 의미를 가지게 됐다. 이들은 “그 탓일까? 얼마 전 콘서트에서 ‘우리 무대를 보고 얻은 힘으로 일상을 살아갔으면 좋겠다’는 최애의 멘트를 듣고 울컥했다”고 말했다. 왜냐고? “계엄을 겪은 뒤 보는 무대가 계엄 전 무대를 보는 방식과 같을 수 없고, 아이돌이 만들어내는 환상을 온전히 즐기기 위해서는 세계가 제대로 기능해야 한다는 걸 실감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이전엔 비슷한 말을 들으면 ‘난 계속 아이돌만 보며 살고 싶은데, 왜 현실로 쫓아내지?’ 하고 짜증이 났는데, 이젠 일상의 소중함도 이해하게 되었다”고 답했다.
이들은 탄핵 광장 응원봉의 의미에 대해 “낙관과 사랑에 기반한 운동의 가능성을 확인한 일”이라고 평가했다. 나아가 2016년 이화여대 학생들이 농성장에서 부른 ‘다시 만난 세계’가 2024년 탄핵 광장으로 이어졌듯이 이들은 “우리가 지나온 과거의 시간들이 결국 다음 광장으로 이어질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는 광장의 시민에게 이전과 다른 의미의 노래가 되었듯 말이다.
지난 11월22일 이재명 대통령의 과로를 걱정하는 이들에게 김혜경 여사는 “대통령께서는 ‘1년 전 얼음 아스팔트 위의 키세스단이 쉬엄쉬엄하는 대통령을 뽑은 것이 아니다'라며 기내에서도 잠을 아끼고 서류를 꼼꼼히 챙긴다”고 말했다. 그만큼 ‘키세스단’은 헌신의 상징이다.
눈보라 속에서 은박의 담요를 두르고 윤석열 탄핵을 외친 키세스단으로서, 2025년 1월 아스팔트를 지킨 스무살 문가빈씨의 광장은 지하철 시위로 이어지고 있다. 지난 11월18일, 가빈씨는 서울 지하철 광화문역에서 열린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의 ‘66차 출근길 지하철 탑니다’ 시위 현장에서 박경석 전장연 상임공동대표의 곁을 지키고 있었다. 가빈씨는 지난 3월부터 박 대표의 ‘활동지원사’로 일해왔다.
지난 11월18일 서울 지하철 광화문역에서 열린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의 ‘66차 출근길 지하철 탑니다’ 시위에서 문가빈씨(오른쪽)가 박경석 전장연 대표의 휠체어를 손보고 있다. 김효실 기자 trans@hani.co.kr
지하철이 없는 경남 창원에서 자란 가빈씨는 전장연 시위에 무심했다. 그런 그에게 지난해 12월14일 서울 여의도 탄핵 집회 무대에서 박 대표가 “지하철 출근길 시위할 때처럼 (휠체어에서 내려와) 엎드려 기면서” 발언하는 모습이 “강렬하게” 다가왔다. 이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민주주의여 만세’라고 쓴 자신의 깃발을 돌아봤다. 그는 “오로지 계엄, 내란만 생각하고 ‘장애인도 시민으로 이동하는 민주주의’라는 걸 생각해보지 못한 내가 부끄러워졌다”고 돌이켰다.
그는 지난 1월 서울 한강진역 근처에서 키스세단이 한 밤샘 시위도, 그날 아침 전장연의 지하철 ‘다이인’(die-in, 죽은 듯 누워 있는 시위 형식) 행동에 연대한 뒤 합류했다. 당시 부산에서 대학 생활을 하던 가빈씨는 고깃집 아르바이트를 해서 모은 돈으로 주 1회 이상 서울에 왔고, 그때마다 전장연 시위에 참여했다. 지난 2월 말에는 휴학계를 낸 뒤 서울에 거주지를 마련했다. 가빈씨는 “그때쯤엔 부산에서 친구들과 노는 동안에도 여기(전장연 시위 현장) 생각이 났다”며 “내가 (탄핵 광장)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겠다는 걸 알았다”고 말했다.
전장연 다이인 행동에 참여한 문가빈씨(오른쪽)가 박경석 전장연 대표와 마주보고 있는 모습. 문가빈 제공
광장의 외침이 뜻밖의 변화를 불러온 경우도 있다. 지난해 12월11일 부산 서면에서 열린 윤 전 대통령 탄핵 촉구 집회 무대에서 자신을 “소위 말하는 술집 여자”라고 밝히며 민주주의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는 발언으로 화제를 모았던 김유진(가명)씨는 지난 11월13일 2026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을 치렀다. 유진씨는 발언 당시 쿠팡 노동자들의 죽음, 여성폭력, 성소수자, 장애인, 이주노동자 등을 언급하며 “이 모든 것들이 해결되지 않는다면 우리의 민주주의는 여전히 완벽하지 못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 발언을 담은 2분짜리 영상은 엑스(X·옛 트위터)에서 사흘 만에 조회수 500만회를 넘기며 호응을 얻었다.
지난해 12월11일 부산 서면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탄핵 촉구 집회 무대에서 발언하는 김유진(가명)씨 모습. 엑스 갈무리
유진씨는 올해 초 노래방 도우미 일을 관두고, 지난 10개월여 동안 대학 입시를 준비하는 수험생으로 생활했다. 그는 한겨레에 “제 집회 발언 영상과 언론 인터뷰를 본 어느 시민분이 학비를 포함한 생활비 후원을 해주셔서 일을 관두고 공부에 집중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익명의 시민 후원자는 당시 유진씨가 “일을 하면서 학비를 모으고 있다. 늦었지만 대학에 가서 사회학을 전공하고, 활동가로 일하는 게 꿈”이라고 인터뷰한 대목을 눈여겨봤다. 유진씨는 “(집회) 발언하길 잘했다, 살다 보면 기회가 생기는구나,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부산에서 왕복 10시간 이상 걸리는 경기 파주 ‘용주골’에 마련된 성매매집결지 강제폐쇄 반대 농성장에 연대 방문을 다녀오는 등 일하는 틈틈이 시위에 참여하기도 했다.
일상의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분투하는 청소년도 있다. 지난 11월22일 서울시의회 브리핑룸, 교복 입은 청소년들 사이 검은 재킷과 청바지를 입은 ‘학교 밖 청소년’ 민지환(17)군이 마이크 앞에 섰다. 지환군은 떨리는 목소리로 “많은 청소년이 과도한 야간 학습과 늦은 귀가로 힘들어하고 있다”며 “청소년들의 기본권 침해하는 조례를 즉각 폐기하라”고 외쳤다. 지난 10월 말 서울시의회에 고등학생의 학원 교습 시간을 밤 10시에서 자정으로 연장하는 조례가 발의되자 지환군이 활동하는 ‘민주청소년네트워크’는 이날 조례 폐기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지난 11월22일 서울 중구 서울시의회 앞에서 열린 민주청소년네트워크의 ‘교습 시간 밤 12시 연장 조례 폐기 촉구 기자회견’에서 민지환군(17·가운데)이 발언을 하고 있다. 고나린 기자
뮤지컬 음악감독을 꿈꾸는 지환군은 실용음악 입시에 집중하려 지난해 고등학교를 자퇴했다. “사회문제에 관심도 별로 없고 잘 몰랐던” 지환군은 대부분의 시간을 드럼 연습에 몰두했다. 그런 지환군의 일상을 비상계엄이 바꿔놨다. 지난해 12월7일엔 “윤석열 전 대통령에게 화가 나서” 집회에 처음 나갔고, 14일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가결될 땐 소리 지르며 눈물을 흘렸다. 이후 30번가량 집회에 나가며 “아무것도 아닌 내가, 세상을 바꾸는 한명이 될 수 있다”는 용기를 얻었다.
용기는 참여로 이어졌다. 지환군은 “다시는 내란이 일어나지 않으려면 시민으로서 정치와 민주주의를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래서 “청소년들과 더 나은 세상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 민주청소년네트워크 활동을 시작했다. 탐탁지 않은 반응이 돌아올 때도 있었다. 지환군은 “민주청소년네트워크 활동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렸는데, 친구에게 ‘지환아, 너 좌파야?’ 하는 문자가 오기도 했다”며 “실제로 주변에선 정치를 장난으로 소비하거나 윤 전 대통령을 여전히 지지하는 또래가 적지 않다. 더 열심히 목소리를 내고 싶은 이유”라고 말했다. 지환군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문제로 ‘10·20 남성의 극우화’를 꼽으며 “극우가 아닌 민주주의를 원하는 청소년도 여기 존재한다는 걸 알리고 싶다”고 했다.
지난해 12월3일 밤, ‘계엄’ 뉴스를 보고 국회로 달려가 새벽을 맞은 최세윤(25)씨는 남태령 투쟁 현장에도 있었다. 지난해 12월21일 밤 트랙터를 몰고 온 농민들이 남태령 고개에서 막혔다는 이야기를 듣고서였다. 이튿날 아침 지하철역에 내렸더니 시민들이 핫팩과 음식을 나눠줬다. 1980년 광주 5·18 주먹밥 같았다. 남태령이라는 공간에서 농민과 시민들이 만나 힘을 모은다는 게 뭉클했다. 지난해 5월 플랫폼씨에서 개최한 동학역사기행에서 만났던 ‘농민’이었다. 어렴풋이만 알고 있던 130년 전 동학농민혁명 때 농민군들이 ‘시천주 인내천’ 사상을 갖고 평등사회를 지향했다는 것에 감동했다. 그는 미대를 졸업한 뒤 작품으로 사회변화에 기여하겠다던 꿈을 뒤로 하고 지난 4월부터 시민단체 플랫폼씨(platformc.kr) 전업 활동가로 일하고 있다.
미완의 민주주의 완성을 위해 애쓰는 이들도 있다. 탄핵 광장에는 성소수자를 상징하는 무지개 깃발이 나부꼈다. 차별금지법 제정은 광장의 주된 요구였지만 새 정부에서도 차별금지법 제정은 미뤄지고 있다.
트랜스젠더이자 민주노총 전북본부 부설 전북노동정책연구원 연구위원으로 일하는 조용화씨가 지난 4월14일 전북 전주시 덕진구 진북동 사무실에서 트랜스젠더를 상징하는 머리띠를 보이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조용화씨는 지난해 전주 탄핵 집회에서 이주민 혐오 발언에 반박하기 위해 무대에 처음 올라 12번의 자유발언을 했다. 용화씨는 집회에서 트랜스젠더로 커밍아웃하면서 “탄핵의 시간을 통과하며 다른 소수자들의 목소리와 만났고, 지역에서도 잘 살 수 있겠다 확신하게 됐다”고 말했다. 민주노총 전북본부 부설 전북노동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인 용화씨는 광장 이후 전주의 퀴어를 모아내는 일을 고민하고 실천했다. 그는 탄핵 이후에도 광장의 목소리를 담아내기 위한 ‘전주 퀴어들의 일과 삶 말하기 글방’을 13명의 지역 퀴어들과 함께 진행했다.
글방 연구는 일주일에 두세 시간 지역과 광장, 퀴어의 삶이 서로와 어떻게 얽혀 있는지 다양한 ‘쓰기’로 탐색하는 7주 프로그램이다. 그렇게 모인 시간이 서로의 안부를 확인하고 음식을 나누는 돌봄이 되기도 했다. 글방의 돌봄은 프로그램이 끝난 뒤에도 ‘단체행동’이 되었다. 지난해 8월 글방에 참여했던 동성 커플이 전주 완산구청에서 동성 부부로 혼인을 신고했다. 두 사람의 신고는 불수리되었지만, 용화씨는 “글방 친구들 10명이 혼인신고 현장에 몰려와 그들 곁에서 축하와 격려를 보냈다”고 돌이켰다. 그에게 광장은 “숨구멍”이었고, 많은 이들에게 그랬던 것처럼 “목소리를 내지 못하던 사람의 목소리를 내는 공간”이었다. 이렇게 광장에서 만난 이들이 전국에서 서로에게 기대며 살아가고 있다.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김효실 기자 trans@hani.co.kr 고나린 기자 me@hani.co.kr 정대하 기자 daeha@hani.co.kr
내란은 끝났지만, 광장은 끝나지 않았다.
지난해 12월3일 윤석열 전 대통령의 계엄 선포를 막기 위해 거리로 나섰던 시민은 ‘탄핵 광장’이 끝났지만 자신만의 광장에서 여전히 서 있다. 1년이 지났지만 광장의 깃발은 나부끼고, 응원봉은 빛나고 있다.
릴게임가입머니 ‘내향인 깃발’을 들고 탄핵 집회에 나섰던 강민지(31·활동명)씨의 ‘광장’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민지씨는 자신을 시민단체나 노동조합에 속해 있지 않은 디자인 관련 일을 하는 “평범한 내향형 직장인”이라고 소개했다. 록페스티벌에 들고나가던 ‘내향인’ 깃발을 챙겨 민지씨는 지난해 12월7일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뒤 처음 열린 주 한국릴게임 말 집회에 섰다. 그는 “여성과 소수자를 탄압하던 윤석열 정부가 일상까지 탄압하려 했다는 것에 분노해” 지난해 12월부터 4개월간 이어진 탄핵 집회에 연차를 써가며 참여했다. 그렇게 탄핵 집회는 “내 일상을 살아내기도 바빴던” 인생에 전환점이 됐다.
지난 9월 ‘내향인’ 기 알라딘게임 수 강민지씨가 수익금 기부 프로젝트를 위해 제작한 ‘내향인’ 티셔츠. 강민지씨 제공
민지씨는 엠비티아이(MBTI)의 내향형(I·아이)이 97%에 달하지만 탄핵 뒤에도 ‘내향인’ 깃발을 든다. 청소년기에 여성폭력에 노출됐던 경험을 떠올리며 서울시립십대여성건강센터 ‘나는봄’ 폐쇄 반대 집회에 갔고, 온라인릴게임 동물권행동 ‘카라’에서 봉사활동을 하며 만났던 강아지 ‘라일리’를 떠올리며 카라 노동조합에 지지 목소리를 냈다. 민지씨는 “아직도 투쟁할 일이 많다는 게 슬프지만, 연대가 계속되면 사회가 나은 방향으로 변한단 희망을 품는다”고 했다. 그는 더 실질적으로 연대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하다 지난 9월부터 10월까지 직접 제작한 ‘내향인 굿즈’를 팔아 수익금을 기 바다이야기무료 부하기도 했다. 목표 금액을 50만원으로 잡았지만, 수익금은 200만원을 훨씬 넘겼다. 강씨는 이 금액을 지난달 청소년 성소수자 지원센터 ‘띵동’과 카라 노조에 기부했다.
시민을 겨냥한 계엄 선포는 ‘내향인’을 거리로 나오게 했고, ‘누워 있던 사람들’을 일어나 외치게 했다. 국민의 분노는 탄핵 광장의 다양한 깃발들로 표현됐다. 케이(K)팝 팬들이 들고나온 ‘응원봉’은 탄핵 이후의 세계를 상상하는 빛이 되었다.
12월3일 내란 일에 ‘케이팝 응원봉 걸스’가 출간됐다. 이 책의 출판사 클레이하우스는 “한국의 젊은 여성들이 왜 응원봉을 들고 거리로 나섰는가”라는 시대적 질문을 던지는 인터뷰집이라고 소개한다. “최애(응원하는 아이돌 중 가장 아끼는 멤버)야, 살기 좋은 세상 만들어줄게”라는 마음으로 계엄을 막았던 구구·일석·희주(활동명)씨가 필자로 나섰다. 케이팝 팬인 이들은 “우리와 함께 이 자리에 선 이들은 누구일까?” 궁금증을 가지고 6명의 ‘응원봉 걸스’를 인터뷰했다. 희주는 최근 인스타그램에 “내성적인 제가 광장에 나가 모르는 사람들에게 말을 붙이고, 연락처를 건네고, 실패도 성공도 한 좌충우돌의 4개월이었다”며 “즐겁고, 기꺼워서 한 일이었다”고 출간 소식을 알렸다.
케이팝 팬으로 응원봉을 들고 거리에 나섰던 구구(왼쪽부터), 일석, 희주가 탄핵 광장을 밝혔던 응원봉을 들고 있다. 이들은 응원봉 팬들을 인터뷰해 ‘케이팝 응원봉 걸스’를 발간했다. 클레이하우스 제공
아이돌 콘서트에서 반짝이던 응원봉은 이제 다른 의미를 가지게 됐다. 이들은 “그 탓일까? 얼마 전 콘서트에서 ‘우리 무대를 보고 얻은 힘으로 일상을 살아갔으면 좋겠다’는 최애의 멘트를 듣고 울컥했다”고 말했다. 왜냐고? “계엄을 겪은 뒤 보는 무대가 계엄 전 무대를 보는 방식과 같을 수 없고, 아이돌이 만들어내는 환상을 온전히 즐기기 위해서는 세계가 제대로 기능해야 한다는 걸 실감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이전엔 비슷한 말을 들으면 ‘난 계속 아이돌만 보며 살고 싶은데, 왜 현실로 쫓아내지?’ 하고 짜증이 났는데, 이젠 일상의 소중함도 이해하게 되었다”고 답했다.
이들은 탄핵 광장 응원봉의 의미에 대해 “낙관과 사랑에 기반한 운동의 가능성을 확인한 일”이라고 평가했다. 나아가 2016년 이화여대 학생들이 농성장에서 부른 ‘다시 만난 세계’가 2024년 탄핵 광장으로 이어졌듯이 이들은 “우리가 지나온 과거의 시간들이 결국 다음 광장으로 이어질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는 광장의 시민에게 이전과 다른 의미의 노래가 되었듯 말이다.
지난 11월22일 이재명 대통령의 과로를 걱정하는 이들에게 김혜경 여사는 “대통령께서는 ‘1년 전 얼음 아스팔트 위의 키세스단이 쉬엄쉬엄하는 대통령을 뽑은 것이 아니다'라며 기내에서도 잠을 아끼고 서류를 꼼꼼히 챙긴다”고 말했다. 그만큼 ‘키세스단’은 헌신의 상징이다.
눈보라 속에서 은박의 담요를 두르고 윤석열 탄핵을 외친 키세스단으로서, 2025년 1월 아스팔트를 지킨 스무살 문가빈씨의 광장은 지하철 시위로 이어지고 있다. 지난 11월18일, 가빈씨는 서울 지하철 광화문역에서 열린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의 ‘66차 출근길 지하철 탑니다’ 시위 현장에서 박경석 전장연 상임공동대표의 곁을 지키고 있었다. 가빈씨는 지난 3월부터 박 대표의 ‘활동지원사’로 일해왔다.
지난 11월18일 서울 지하철 광화문역에서 열린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의 ‘66차 출근길 지하철 탑니다’ 시위에서 문가빈씨(오른쪽)가 박경석 전장연 대표의 휠체어를 손보고 있다. 김효실 기자 trans@hani.co.kr
지하철이 없는 경남 창원에서 자란 가빈씨는 전장연 시위에 무심했다. 그런 그에게 지난해 12월14일 서울 여의도 탄핵 집회 무대에서 박 대표가 “지하철 출근길 시위할 때처럼 (휠체어에서 내려와) 엎드려 기면서” 발언하는 모습이 “강렬하게” 다가왔다. 이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민주주의여 만세’라고 쓴 자신의 깃발을 돌아봤다. 그는 “오로지 계엄, 내란만 생각하고 ‘장애인도 시민으로 이동하는 민주주의’라는 걸 생각해보지 못한 내가 부끄러워졌다”고 돌이켰다.
그는 지난 1월 서울 한강진역 근처에서 키스세단이 한 밤샘 시위도, 그날 아침 전장연의 지하철 ‘다이인’(die-in, 죽은 듯 누워 있는 시위 형식) 행동에 연대한 뒤 합류했다. 당시 부산에서 대학 생활을 하던 가빈씨는 고깃집 아르바이트를 해서 모은 돈으로 주 1회 이상 서울에 왔고, 그때마다 전장연 시위에 참여했다. 지난 2월 말에는 휴학계를 낸 뒤 서울에 거주지를 마련했다. 가빈씨는 “그때쯤엔 부산에서 친구들과 노는 동안에도 여기(전장연 시위 현장) 생각이 났다”며 “내가 (탄핵 광장)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겠다는 걸 알았다”고 말했다.
전장연 다이인 행동에 참여한 문가빈씨(오른쪽)가 박경석 전장연 대표와 마주보고 있는 모습. 문가빈 제공
광장의 외침이 뜻밖의 변화를 불러온 경우도 있다. 지난해 12월11일 부산 서면에서 열린 윤 전 대통령 탄핵 촉구 집회 무대에서 자신을 “소위 말하는 술집 여자”라고 밝히며 민주주의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는 발언으로 화제를 모았던 김유진(가명)씨는 지난 11월13일 2026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을 치렀다. 유진씨는 발언 당시 쿠팡 노동자들의 죽음, 여성폭력, 성소수자, 장애인, 이주노동자 등을 언급하며 “이 모든 것들이 해결되지 않는다면 우리의 민주주의는 여전히 완벽하지 못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 발언을 담은 2분짜리 영상은 엑스(X·옛 트위터)에서 사흘 만에 조회수 500만회를 넘기며 호응을 얻었다.
지난해 12월11일 부산 서면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탄핵 촉구 집회 무대에서 발언하는 김유진(가명)씨 모습. 엑스 갈무리
유진씨는 올해 초 노래방 도우미 일을 관두고, 지난 10개월여 동안 대학 입시를 준비하는 수험생으로 생활했다. 그는 한겨레에 “제 집회 발언 영상과 언론 인터뷰를 본 어느 시민분이 학비를 포함한 생활비 후원을 해주셔서 일을 관두고 공부에 집중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익명의 시민 후원자는 당시 유진씨가 “일을 하면서 학비를 모으고 있다. 늦었지만 대학에 가서 사회학을 전공하고, 활동가로 일하는 게 꿈”이라고 인터뷰한 대목을 눈여겨봤다. 유진씨는 “(집회) 발언하길 잘했다, 살다 보면 기회가 생기는구나,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부산에서 왕복 10시간 이상 걸리는 경기 파주 ‘용주골’에 마련된 성매매집결지 강제폐쇄 반대 농성장에 연대 방문을 다녀오는 등 일하는 틈틈이 시위에 참여하기도 했다.
일상의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분투하는 청소년도 있다. 지난 11월22일 서울시의회 브리핑룸, 교복 입은 청소년들 사이 검은 재킷과 청바지를 입은 ‘학교 밖 청소년’ 민지환(17)군이 마이크 앞에 섰다. 지환군은 떨리는 목소리로 “많은 청소년이 과도한 야간 학습과 늦은 귀가로 힘들어하고 있다”며 “청소년들의 기본권 침해하는 조례를 즉각 폐기하라”고 외쳤다. 지난 10월 말 서울시의회에 고등학생의 학원 교습 시간을 밤 10시에서 자정으로 연장하는 조례가 발의되자 지환군이 활동하는 ‘민주청소년네트워크’는 이날 조례 폐기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지난 11월22일 서울 중구 서울시의회 앞에서 열린 민주청소년네트워크의 ‘교습 시간 밤 12시 연장 조례 폐기 촉구 기자회견’에서 민지환군(17·가운데)이 발언을 하고 있다. 고나린 기자
뮤지컬 음악감독을 꿈꾸는 지환군은 실용음악 입시에 집중하려 지난해 고등학교를 자퇴했다. “사회문제에 관심도 별로 없고 잘 몰랐던” 지환군은 대부분의 시간을 드럼 연습에 몰두했다. 그런 지환군의 일상을 비상계엄이 바꿔놨다. 지난해 12월7일엔 “윤석열 전 대통령에게 화가 나서” 집회에 처음 나갔고, 14일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가결될 땐 소리 지르며 눈물을 흘렸다. 이후 30번가량 집회에 나가며 “아무것도 아닌 내가, 세상을 바꾸는 한명이 될 수 있다”는 용기를 얻었다.
용기는 참여로 이어졌다. 지환군은 “다시는 내란이 일어나지 않으려면 시민으로서 정치와 민주주의를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래서 “청소년들과 더 나은 세상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 민주청소년네트워크 활동을 시작했다. 탐탁지 않은 반응이 돌아올 때도 있었다. 지환군은 “민주청소년네트워크 활동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렸는데, 친구에게 ‘지환아, 너 좌파야?’ 하는 문자가 오기도 했다”며 “실제로 주변에선 정치를 장난으로 소비하거나 윤 전 대통령을 여전히 지지하는 또래가 적지 않다. 더 열심히 목소리를 내고 싶은 이유”라고 말했다. 지환군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문제로 ‘10·20 남성의 극우화’를 꼽으며 “극우가 아닌 민주주의를 원하는 청소년도 여기 존재한다는 걸 알리고 싶다”고 했다.
지난해 12월3일 밤, ‘계엄’ 뉴스를 보고 국회로 달려가 새벽을 맞은 최세윤(25)씨는 남태령 투쟁 현장에도 있었다. 지난해 12월21일 밤 트랙터를 몰고 온 농민들이 남태령 고개에서 막혔다는 이야기를 듣고서였다. 이튿날 아침 지하철역에 내렸더니 시민들이 핫팩과 음식을 나눠줬다. 1980년 광주 5·18 주먹밥 같았다. 남태령이라는 공간에서 농민과 시민들이 만나 힘을 모은다는 게 뭉클했다. 지난해 5월 플랫폼씨에서 개최한 동학역사기행에서 만났던 ‘농민’이었다. 어렴풋이만 알고 있던 130년 전 동학농민혁명 때 농민군들이 ‘시천주 인내천’ 사상을 갖고 평등사회를 지향했다는 것에 감동했다. 그는 미대를 졸업한 뒤 작품으로 사회변화에 기여하겠다던 꿈을 뒤로 하고 지난 4월부터 시민단체 플랫폼씨(platformc.kr) 전업 활동가로 일하고 있다.
미완의 민주주의 완성을 위해 애쓰는 이들도 있다. 탄핵 광장에는 성소수자를 상징하는 무지개 깃발이 나부꼈다. 차별금지법 제정은 광장의 주된 요구였지만 새 정부에서도 차별금지법 제정은 미뤄지고 있다.
트랜스젠더이자 민주노총 전북본부 부설 전북노동정책연구원 연구위원으로 일하는 조용화씨가 지난 4월14일 전북 전주시 덕진구 진북동 사무실에서 트랜스젠더를 상징하는 머리띠를 보이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조용화씨는 지난해 전주 탄핵 집회에서 이주민 혐오 발언에 반박하기 위해 무대에 처음 올라 12번의 자유발언을 했다. 용화씨는 집회에서 트랜스젠더로 커밍아웃하면서 “탄핵의 시간을 통과하며 다른 소수자들의 목소리와 만났고, 지역에서도 잘 살 수 있겠다 확신하게 됐다”고 말했다. 민주노총 전북본부 부설 전북노동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인 용화씨는 광장 이후 전주의 퀴어를 모아내는 일을 고민하고 실천했다. 그는 탄핵 이후에도 광장의 목소리를 담아내기 위한 ‘전주 퀴어들의 일과 삶 말하기 글방’을 13명의 지역 퀴어들과 함께 진행했다.
글방 연구는 일주일에 두세 시간 지역과 광장, 퀴어의 삶이 서로와 어떻게 얽혀 있는지 다양한 ‘쓰기’로 탐색하는 7주 프로그램이다. 그렇게 모인 시간이 서로의 안부를 확인하고 음식을 나누는 돌봄이 되기도 했다. 글방의 돌봄은 프로그램이 끝난 뒤에도 ‘단체행동’이 되었다. 지난해 8월 글방에 참여했던 동성 커플이 전주 완산구청에서 동성 부부로 혼인을 신고했다. 두 사람의 신고는 불수리되었지만, 용화씨는 “글방 친구들 10명이 혼인신고 현장에 몰려와 그들 곁에서 축하와 격려를 보냈다”고 돌이켰다. 그에게 광장은 “숨구멍”이었고, 많은 이들에게 그랬던 것처럼 “목소리를 내지 못하던 사람의 목소리를 내는 공간”이었다. 이렇게 광장에서 만난 이들이 전국에서 서로에게 기대며 살아가고 있다.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김효실 기자 trans@hani.co.kr 고나린 기자 me@hani.co.kr 정대하 기자 dae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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