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헬-로우, 단테’에서 단테 역의 최지욱(왼쪽), 네비길리우스 역의 허솔(오른쪽), 카론 역의 정대진 배우가 열연하고 있다.


단테 알리기에리의 ‘신곡’이 묘사한 지옥은 아래로 내려갈수록 죄의 깊이가 더해지는 층위의 세계였다. 반면 우리가 현재 살아가는 사회는 위로 올라갈수록 더 치열해지는 경쟁의 세계다. 추락과 상승, 상이해 보이는 두 개의 구조는 아이러니하게도 같은 질문을 향한다. ‘인간은 어디에서 어떻게 길을 잃는가.’
연극 ‘헬-로우(Hell-Low), 단테’는 두 세계의 구조를 정면에서 맞붙이며, 원작의 지옥을 수직 오션파라다이스릴게임 적으로 뒤틀어 오늘의 현실을 비추어낸다. 프로젝트SOL(대표 허솔) 제작,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후원으로 11월 13~23일 서울 혜화동 대학로 선돌극장에서 공연됐다.
‘Hell-Low’라는 조어부터 기막힌 중의법을 품고 있다. 안녕(Hello)이라고 말하려는 순간, 이미 지옥(Hell) 아래(Low)로 빨려 들어가는 현실. 인사말처럼 가벼운 카카오야마토 단어에 지옥의 추락을 숨겨놓은 언어적 장치가 작품의 세계관을 공감각화 한다.
연극 포스터에 등장한 마리오네트 실루엣은 단테의 세계를 한 줄로 요약한다. “우리는 자본의 손에 실처럼 매달린 인형이다.” 자본은 우리를 위로 끌어올리는 듯하지만, 실상은 위에서 조종하고 언제든 버릴 수 있다. 원작의 단테가 “이 문으로 들어서는 자, 모든 희망 황금성게임랜드 을 버려라”라고 경고했던 그 지옥문은, 어느새 우리의 현실 입구에 걸려 있다.



연극 ‘헬-로우, 단테’ 포스터


한국 사회를 뒤덮은 양극화와 불평등, 빚에 짓눌린 청년들, 비정규·플랫폼 노동의 불안정성이 만든 생존의 바다이야기비밀코드 압박, 이 모두가 ‘경쟁에서 밀리면 추락한다’는 공포를 심는다. 단테의 지옥이 죄의 무게로 인간을 가라앉게 했다면, 현대 자본주의의 지옥은 경쟁의 무자비한 속도로 인간을 질식시킨다.
극은 곳곳에서 ‘빛과 빚’을 교차시킨다. 한때 미래와 기회의 상징이던 빛은 오늘의 청년들에게 갚아야 할 빚으로 바뀌었다. 이 언어적 대비는 자본주의가 ‘희망의 백경릴게임 이미지’를 앞세우지만, 실상은 ‘부채와 경쟁의 구조’로 인간을 몰아넣는 세계라는 것을 날카롭게 드러낸다.
‘토끼와 거북이’ 에피소드, 그리고 ‘이상한 이상의 나라’ 에피소드는 “달리지 않으면 뒤처진다”는 앨리스의 세계(레드 퀸 신드롬)를 연상시키며, ‘지옥의 일상성’을 무대 위에 펼쳐낸다. 배우들은 숨이 차오르도록 달리고, 구르고, 몸을 내던진다. 관객의 웃음은 이내 공포로 수렴한다. 숨 가쁜 신체성이야말로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의 압축된 지옥도다.
‘헬-로우, 단테’의 무대는 거의 비어 있다. 네트, 천, 간단한 오브제 몇 개 외에는 아무 것도 없다. 비어 있음은 부족함이 아니라 선택된 방식의 언어다. 치열한 몸짓으로 구축한 무대는 배우의 몸을 세계관 그 자체로 사용하는 프로젝트SOL의 공연철학을 잘 전달한다. 자본주의라는 거대한 구조를 화려한 세트가 아닌, 힘겹게 버티고, 흔들리고, 달리고, 몸을 던지는 인간의 몸으로 표현하는 이 방식이야말로 연극의 백미다.



연극 ‘헬-로우, 단테’ 무대


뒤편 코러스들은 짙은 무채색 의상에 날 선 몸짓으로 움직인다. 그들이 상징하는 것은 욕망의 사다리, 경쟁의 압박이다. 때로는 지옥의 문이 되고, 때로는 단테를 감시하는 어둠이 된다. 무대는 비어 있지만, 배우들이 움직이는 순간 그 빈 공간은 ‘현실의 압력’으로 가득 찬다. 원전 ‘단테’의 공간 구성, 즉 켜켜이 쌓인 지옥의 공간을 한순간의 신체적 이미지로 재창조한 탁월한 연출이 돋보인다.
작품을 강렬하게 관통하는 ‘만화적 리듬’은 고통마저 웃음 짓게 하는 해방의 순간을 만들어낸다. 움직임은 과장되고, 장면 전환은 빠르다. 음악과 제스처는 코믹하게 비틀리고, 블랙코미디 특유의 ‘통증 속 웃음’이 만들어진다. 관객은 잠시 숨통이 트이지만, 문득 깨닫는다. 그 웃음이 우리가 매일 맞닥뜨리는 자본주의의 잔혹함을 잠시 잊게 해주는 ‘해방의 기술’이었다는 사실을.
‘헬-로우, 단테’는 단테의 ‘비극성과 장중함’을 현대적인 ‘리듬과 유머’로 전환하는 데 성공했다. 이 역시 깊이를 잃지 않으면서도 난해성을 과감히 대중화하는, ‘무거울수록 가볍게, 가벼울수록 무겁게’를 내건 프로젝트SOL의 공연 방식이다.
이제 희망을 들여다볼 차례다. 단초는 단테의 ‘우쿨렐레’와 네비길리우스의 ‘흰 드레스’다. 단테는 낡은 우쿨렐레를 들고 있다. 네비길리우스는 어둠 속에서도 환하게 뜨이는 흰 드레스를 입고 있다. 이 대비는 분명하다. 어두움 사이에서도 끝끝내 빛을 놓지 않으려는 둘은 현실의 지옥 속에서도 가쁜 숨을 몰아쉬며 살아 있는 순수와 희망을 표상한다. 그 희망이 구조적 압박 속에서 어떻게 공격받고, 때로는 깨지고, 때로는 버티는지가 이 작품의 중심 서사를 이룬다.



연극 ‘헬-로우, 단테’에서 단테가 우쿨렐레를 연주하는 동안 네비길리우스가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다.


연극이 종반으로 흐를 지점에 두 사람은 말한다. “우리는 길을 잃었다. 화려한 불빛 아래서.” 과거 단테의 ‘절망적 어둠’과 대비되는 오늘의 ‘눈부신 지옥’이다. 하지만 현실의 단테는 우쿨렐레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조용히 말한다. “괜찮아. 좀 쉬어가. 우리가 너를 위해 노래하고 있으니.”
단테의 우쿨렐레는 영화 ‘미션’에서 폐허가 된 원주민 마을의 어린이들이 개울가에서 걷어 올린 바이올린에 대한 오마주다. 모든 것이 무너졌지만 ‘음악=희망’이 남았다. 파괴된 세계에서 인간을 구원으로 이끄는 것은 거대한 영웅서사가 아니라 작은 노래 한 소절이었다.
지옥을 지나며 우리는 무엇을 지키고 있는가. ‘헬-로우, 단테’는 묻는다. 과거 단테의 지옥이 죄의 무게를 재던 공간이었다면, 현대의 지옥은 경쟁의 속도를 강요하는 세계다. 살아남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잃고 있는가. 그리고 무엇을 아직 품고 있는가.
배우들이 몸을 던져 만드는 세계, 비어 있는 무대를 꽉 채우는 움직임, 그 속에서 울려퍼지는 한 자루의 우쿨렐레. 지옥은 이미 왔지만, 우리의 여정은 다시 시작이다. 그리고 어쩌면, 단테가 품고 있는 그 작은 노래가 희망의 시작일지 모른다.
프로젝트SOL 대표 허솔과 정대진·김민정·윤상희·이석구·최지욱·홍한빈·최예진 출연. 허솔 주관·주최, 김명섭 작·연출.
허민 전임기자 기자 admin@119sh.info